묵2동 이야기
묵2동에 방문하기 전에 과연 묵2동이 어떤 곳인지 알고 간다면 더 좋겠죠?
혹은 매일 생활하던 묵2동이더라도 미처 몰랐던 정보, 역사적 이야기를 안다면 같은 공간이 전과 달리 새롭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묵2동의 그러한 소소한 정보를 조사하며 묵2동에 대한
첫 번째 관심사로 바로 '이야기'를 선정했습니다

묵2동 소개
'묵2동'은 서울특별시 중랑구에 위치한 동으로 태릉입구역, 먹골역, 중화역 등과 인접해있습니다. 중랑구는 골목상권 활성화와 거리환경 개선을 위해 도시재생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또한, 중랑천 제방 장미터널과 물길이 있는 묵2동은 지역 특성을 살려 '사계절 꽃이 피는 장미마을'을 주제로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묵2동에는 마을의 재생사업에 도움을 주는 장미마을재생연구소, 장미마을관리사무소 등이 있으며 문화를 재건하고 이끌기 위 한 주민도서관, 청년문화발전소 등이 증측 중입니다.
묵동의 유래 이야기
여러분들은 ‘묵동’이란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아시나요? ‘묵동’은 순우리말 ‘먹골’이란 단어의 행정구역상 한자표기입니다. ‘먹골역’에서 ‘먹골’이 바로 ‘묵동’의 원래 이름이었던 거죠. 그렇다면 ‘묵동’의 본이름, ‘먹골’이란 이름은 어떤 유래에서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먹골’에서 ‘먹’은 바로 문방사우 중 하나인 ‘먹’을 의미한답니다. 옛날 조선시대 묵동 지역은 ‘먹’을 주로 생산하는 동네였기에 ‘먹골’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먹골’의 ‘먹’은 인근 봉화산 소나무 참숯으로 만들었기에 궁중에 진상할 만큼 품질이 좋았다고 해요. 이 ‘먹골’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한자어 표기로 바꾸어져 ‘묵동’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랍니다. 오늘날 ‘먹골’은 한자어 표기인 ‘묵동’으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진 ‘먹골역’이란 역 이름으로 그 유래를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먹골배 전설 이야기
‘먹골’이란 이름과 가장 관련 깊은 설화로는 ‘먹골배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시대 때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긴 단종은 사육신의 복위운동의 실패로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단종의 호송을 책임졌던 사람이 바로 금부도사 왕방연이었습니다. 금부도사 왕방연은 단종에게 물 한모금 주지 않고 호송하라는 어명을 수행하면서도 단종을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임무를 마치고 난 뒤, 왕방연은 서울에 돌아와서 관직을 벗어던지고 먹골에서 필묵과 벗을 하며 배나무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어명을 지키기 위해 단종을 호송했던 일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이었다고 전설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후 배나무가 번식해 먹골 일대가 배 밭으로 변했고, 이후 먹골배는 이 지역의 배를 통칭하게 되었습니다. 먹골배 전설에서 등장하는 먹골배는 현재까지도 이름 높은 배 브랜드로 남아있습니다.
중랑천 의인 이야기
여러분은 장미 산책로를 지나 도착할 수 있는 묵동 수림 공원(묵동 장미공원)에서 이러한 추모비를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추모비를 보시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이 추모비는 바로 중랑구 의인인 김태훈 의인을 위해 마련된 추모비입니다. 1993년 6월 당시 15세였던 김태훈 의인은 중랑천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다 결국 함께 익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인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자 서울시는 묵동 수림 공원에 이러한 추모비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추모비는 고인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자는 의미와, 이를 보면서 묵2동의 주민들이 함께 서로를 돕는 이타심을 항상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설치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앞으로 장미공원을 산책하게 된다면, 이 추모비에 들려 의인의 의로운 행동을 추모하고 그 의미를 마음속에 새겨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